서울의 봄 흥행 여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개봉 5일 만인 11월 26일 189만 명의 관중을 극장으로 끌어모으며 코로나 이후 시들했던 한국영화계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서울의 봄은 1979년 12·12 사태 시 긴박했던 9시간의 기록으로 영화가 끝난 후에도 긴 여운을 남겼죠. 오늘은 서울의 봄의 모티브가 되었던 실제 주인공들의 겪었을 더 처절한 삶을 기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승자의 역사에 묻힌 영웅들의 쓸쓸한 삶
역사는 항상 승자의 편이고 정의로운 패자는 언제나 그렇게 잊혀 갔습니다. 여기 짧았던 서울의 봄을 적절히 지키려 했던 두 영웅의 쓸쓸한 삶은 다시 한번 민주주의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합니다.
장태완 / 극 중 이태신
장태완 사령관은 쿠데타가 성공한 후 서빙고 분실에서 45일간 고초를 겪었고 강제예편과 함께 가택연금을 당합니다. 아들의 상황에 비관하던 그의 아버지는 충격으로 1980년에 세상을 떠나고 서울대생이었던 그의 아들 역시 2년 뒤 할아버지의 산소 옆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됩니다.
그렇게 모진 세월을 장태완은 아내와 하나 남은 딸을 바라보며 버티다 2010년 79세의 나이로 별세하게 되고 2년 뒤 그의 아내 역시 우울증으로 자살하게 됩니다.
정승화 / 극 중 정상호
쿠데타에 성공한 전두광일당들에 의해 보안사에서 체포된 정상호 총장은 그 길로 서빙고 분실로 끌려가 물고문과 통닭구이 고문등을 당하는 등 치욕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후 17계급이나 강등된 이등병에 강제로 예편되면서 10년형의 징역형을 선고받게 됩니다. 뼛속까지 군인이었던 그에게 이등병 예편은 최고의 굴욕을 겪으며 군인연금 마저 박탈당하며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을 살게 됩니다.
이후 민주화가 되면서 정상호 총장의 모든 직위는 복권되었고 죽는 날까지 군사정권의 만행 및 쿠데타 피해 군인의 권익을 위해 남은 여생을 바쳤습니다.
김진기 / 극 중 김준엽
12·12 사태가 일어나기 전 이를 감지한 김진기는 최규하대통령을 찾아가 이를 알리고 막으려 했으나 하나회의 경호실 병력에 의해 실패하고 최규하대통령은 이들에 의해 구금됩니다. 이후 장태완 수경사령관과 함께 군사반란 진압에 참였으나 실패하며 이후 하나회 소속 부하들에게 하극상의 치욕을 당하며 예비역 준장으로 자진 예편합니다.
평생을 쿠데타의 악몽에 시달리다 정권이 바뀐 후 전두환을 내란죄에 고발하며 그의 한을 조금이라도 풀게 되었습니다.
김오랑 / 극 중 오진호
12·12 사태가 터진 이튿날 새벽 반란군은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체포하기 위해 특전사령부에 들이닥칩니다. 특전사령부는 전력이 많지 않아 반란군의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체포하는 건 너무도 간단한 일이었습니다. 이때 정병주 사령관에게 닥친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을 치킨 이는 오직 김오랑 소령뿐이었습니다. 김오랑은 정병주 사령관을 지키기 위해 반란군과 총격전을 벌이게 되고 현장에서 즉사합니다.
이에 충격을 받은 김오랑의 아내는 시신경 마비로 맹인이 되게 되고 그 후 고통스러운 삶을 살다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됩니다.
전두환 / 극 중 전두광
하나회의 수장이었던 전두환은 12·12 군사반란을 통해 군을 장악, 이듬해 5·17 쿠데타를 일으키며 대한민국의 헌정을 중단시키는 초유의 사태를 만들었습니다. 이에 민주화를 열망하던 대학생과 시민들은 합심하여 5·18 민주화 항쟁을 일으켰고 군사력으로 이를 강제진압하며 국정의 실권을 장악합니다.
이후 11대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고 7년 단임제 새 헌법을 통과시키며 제12대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민주화의 싹이 잘려나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그의 임기 말년이 다가오는 1987년 그의 철권통치를 종식시킬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터집니다. 이는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되었고 결과 대선 후보 노태우의 6·29 선언에 의해 대통력제가 직선제로 바뀌며 전두환은 임기를 모두 마치고 퇴임하게 됩니다.
이후 역사바로 세우기를 통해 1995년 노태우와 함께 구속, 1심에서 상형을, 2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훗날 사면받고 자유의 몸이 됩니다.
노태우 / 극 중 노태건
전두환과 함께 12·12 사태를 주도, 정국을 장악하며 정치인이 됩니다. 박종철고문치사사건이 발단이 된 6월 항쟁 후 6·29 선언을 발표 대통령 직선제 시대를 열며 제13대 대통령의 자리에 앉게 됩니다.
대통령에 취임 후 군부출신을 대거정리 및 재야인사들을 복권시키고 언론의 자유도 확대하는 등 시대의 요구를 적극 수용하였으며 1988년 올림픽도 성공적으로 개최했습니다.
퇴임 후 12·12 사태 및 5·17 내란 주도의 혐의로 구속되어 징역 17년형을 선고받게 됩니다.
아직 진행 중인 슬플 역사
오늘은 잊혀 가는 서울의 봄 실제 주인공의 더 처절한 삶을 지켜보며 대한민국을 고통의 시간으로 몰아간 군부세력과 실패 후 끝없는 비극의 시간으로 몰린 실제 주인공들의 삶을 엿보았습니다. 전두환과 노태우는 이제 이 세상 사람은 아니지만 그들이 스쳐간 흔적은 아직 아물지 않은 채 그날의 고통을 고스란히 품고 있습니다.
그들은 누구에게도 진정한 사죄를 전하지 않았고 상처는 남은 사람들의 몫으로 떠넘겨졌습니다.
생전 통장에 29만이 전부라던 전두환 씨는 골프와 고급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며 비밀금고를 지키는 동안 그날의 희생자들은 지금도 눈물의 하루하루를 살아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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